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88) 파주어촌계장 이경구씨
수정 : 2019-10-01 07:23:44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88) 파주어촌계장 이경구씨
임진강 어부의 시름. 임진강에 배는 띄워놓고 고속도로 고민
은빛 햇살 받으며 임진강에 배 띄우고
가을 햇살이 눈부신 구월의 아침, 황희 정승의 삶이 스민 반구정 옆 임진강. 은빛 물살을 가르며 작은 고깃배 한척이 떠 있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싣고 평생 그물을 던지며 살아온 사람들. 남과 북을 이어 흐르는 임진강에는 강을 터전 삼아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 가는 어부들의 또 다른 삶이 있다. 최근 남북화해 분위기에 들썩하기라도 하련만 어부들은 조용히 그물을 놓고 또 끌어 올린다.
임진강에서 고기잡는 어부
임진강에도 고기 잡는 어부가 있다. 물론 아무나 아무 때나 고기를 잡을 수는 없다. 접경지역이기 때문이다. 임진강 대부분이 군사작전 지역으로 통제되기 때문에 어로활동에 대한 제약이 많다. 수시로 보안교육을 받아야 하며 고기잡이 할 때는 반드시 노란색 모자와 옷을 입어야 한다는 규칙도 있다. 전쟁 직후엔 어부들이 당시 임진강을 지키던 미군에게 날마다 보고하며 둘씩 보초를 서기도 했다. 그래야만 어로작업을 할 수 있었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엔진을 쓰지 못하고 노를 저어 고기를 잡았다. 쾌속선이 되면 월북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 단속하는 까닭. 참여정부 후반에 겨우 풀려 동력선을 띄울 수 있게 되었다.
임진강에서 어부는 하루에 던질 수 있는 그물의 개수는 5개로 제한돼 있다. 하루 평균 20㎏ 안팎의 고기를 잡아 중간상에게 넘긴다. 3, 4월엔 뱀장어 치어가 많이 잡히고 5월부터 여름까지는 황복. 지금은 임진강 참게가 제철이다. 어로 허가권이 있는 어부들이 그물이나 통발을 놓아 참게를 주로 잡는다. 참게는 야행성이므로 낮에 통발을 놓고 적어도 하룻밤을 지난 후에 거둔다. 잡히는 양은 복불복이다. 참게는 떼를 지어 이동을 하는데 마침 통발이 참게 무리 앞에 놓여 있으면 한 번에 수십 킬로그램을 건지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면 몇 킬로그램으로 만족을 하여야 한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임진강 참게는 귀했다. 부실한 수량 관리와 환경오염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0년대 들어 참게가 부쩍 많이 잡히고 있다. 임진강이 맑아지고 어자원 확보를 위한 어린 참게 방류 사업이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참게는 논게, 민물게라고도 불린다. 옛날에는 논에서도 흔했던 게이다. 참게는 민물에서만 평생을 보내지 않는다. 바다를 오간다. 늦가을부터 겨울에 바다와 기수부(바다와 민물이 섞이는 지역)에서 산란을 한다. 알에서 부화한 참게의 유생은 봄에 하천을 따라 자신들의 부모가 살았던 곳으로 올라온다. 이 어린 참게는 가을까지 민물에서 성장을 하여 제 부모들이 그랬듯이 가을에 산란을 하러 바다로 향한다. 바다로 가지 못한 참게들은 민물에서 굴을 파고 월동을 한다. 바다에서 산란을 한 참게는 죽는다. 참게가 산란하러 바다로 향할 때 가장 맛있고, 어부는 이때를 맞추어 잡는다. 지금 9월에서 11월이 임진강 참게의 제철이고 가장 많이 잡는 때다.
파주 어촌계장 임진강 토박이 이경구
이 임진강의 명물 참게 수확철을 앞두고 파주 어촌계의 이경구 계장(54세)은 오히려 시름에 잠겨있다. 바로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문제로 어로활동 외의 시간들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사흘 전에는 밀린 어로작업을 밤새 하다가 몸살감기를 얻어 하루를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그래도 가게를 봐야 하기 때문에 누워만 있을 수 없어 자유로 휴게소 매점에 나와서 손님을 받았다. 임진강 어부의 수입으로만은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경구 계장은 파주 당동리 토박이다. 농사지으시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쉰 해가 넘도록 여기서 자랐다. 그가 어렸을 적 70년대만 하더라도 잡는 물고기의 종류도 많고 양도 많았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농사 짓는 것 보다 더 좋을 거 같아서 이 길을 택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황복이 지금처럼 사람들이 잘 먹는 생선이 아니어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배가 엄청 부풀려서 죽은 것은 공도 차고 했다.
귀한 손님 ‘황복’
그러던 황복 개체수가 점점 줄어 96년에는 멸종위기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지금도 허가 받지 않은 개인이 천렵하거나 유통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2003년 황복 치어의 바닷물 양식이 성공해서 지금은 지자체에서 수십만 마리의 치어들을 방류하고 있다. 그중에서 알을 낳기 위해 회귀하는 황복을 잡아 매운탕집 밥상에 이른바 ‘싯가’로 올려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황복을 ‘금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임진강두리지에 매년 10만마리의 황복 치어를 방류한다.
방류할 치어는 오래 전부터 임진강에서 황복잡이를 해왔던 어부들이 뜻을 모아 결성한 ‘임진강 영어조합’이 도의 예산 3억원을 지원받아 지난 2002년에 건립한 파주 주월리 황복부화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방류되는 황복은 한강하류를 따라 서해바다로 내려가서 어미로 성장하며 3~4년 뒤 5월이면 ‘귀한 손님’이 되어 임진강으로 돌아온다. 한때 금강․섬진강․낙동강에도 알을 낳기 위해 올라오던 황복이 있었으나 강 하구 댐건설과 수질오염 등으로 30년 전에 이미 사라졌고, 지금은 유일하게 한강하류를 거쳐 임진강․한강으로만 올라오고 있다.
군남댐 방류로 황복이 한강으로 가버려
이 황복 잡이에 대해서도 이 계장은 울분을 토한다. 황복이 돌아오는 봄과 여름에 임진강 상류 군남댐에서 느닷없이 방류한다는 것이다. 이때 댐 속의 차가운 물이 황복의 산란에 막대한 장애를 끼쳐 임진강으로 올라오던 황복들이 오히려 한강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 “몇 해 전부터 북쪽의 황강댐 방류로 인한 홍수예방의 차원이라면서 비가 많이 오면 갑자기 13개 수문을 다 열어서 초당 3~4천톤의 물을 갑자기 방류해요. 그러면 댐의 아래에 있는 차가운 물이 임진강 하류를 덮치는데... 참, 고기들이 그 추운 곳에 일부러 와서 알을 낳고 싶겠어요. 어떤 동물이든 자기가 낳은 알을 잘 부화시켜서 새끼로 키우려고 하는 게 본능이잖아요. 요즘은 방류하는 치어들의 만분의 일이나 돌아오는 건지...”
“젓가락 하나만 꽂아도 유속이 달라지는데...”
다시 이계장이 속앓이를 하고 있는 고속도로 문제를 꺼냈다. “요즈음 고기 걱정보다 도로 걱정이 더 크네요. 나는 도무지 그 도로가 필요한 까닭을 모르겠는데. 통일이 돼서 남북이 합의해서 제대로 된 길을 만드는 거라면 누가 뭐라냐고. 지금도 기존의 자유대교, 통일대교 교각은 2~300미터는 접근 금지에요. 무슨 문제 일으킬까봐. 그만큼 어로지역이 좁아지는 거지. 문산 도라산 고속도로 지을 때 임진강에는 평화대교를 놓는다는데 그건 사람이나 물고기한테 다 평화가 아니란 말이에요. 강물이라는 게 쉽게 하는 말로 젓가락 하나만 꽂아도 유속이나 물길이 달라지는데 그 엄청난 콘크리트 교각이면 어떻겠어요. 공사 할 때 진동도 크지만 나중에 차가 다닐 때는 24시간 진형형일 거 아녜요. 고기들이 어떻게 살어? 고기들이 못살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어요.” 어부로서 그에게 이 고속도로는 생태계 파괴 뿐 아니라 생계터전이 또한번 축소되는 일이다.
파주 어촌계는 모두 58척의 배가 있다. 대부분 선주가 선장이다. 거기에 두 세명이 돌아가면서 두레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전체 어부는 100명이 조금 넘는다고 보면 된다. 모두 문산-도라산 고속도로 건설 소식에 아파하고 있다. 파주어촌계는 1차로 파주시청에서 고속도로 건설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지난 19일 청와대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기자회견문과 반대의견서를 청와대에 냈다. 파주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 28명이 참석한 그 자리에 이계장도 함께 했다. “기자회견 하는데 종로경찰서 정보과장이 참 친절하게 안내해 주데요. 의견서 내는 것도 몰랐는데 ‘서한 제출하실 겁니까?’ 그러더라고. 그래서 더 아쉬웠어요. 앞에서는 친절하고 뒤에서는 주민 몰래 설명회하고... 이제 파주시민들도 이 도로의 환경파괴 부분에 대해 분명히 알고 같이 하셔야 돼요. 파주의 구도시, 신도시 분들과 별개의 문제가 결코 아니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자유로 휴게소 앞길에는 차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임진강을 지키며 살아온 이경구 어촌계장의 자리가 임진강처럼 도도히 흘렀으면 했다.
김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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